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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투데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아닌 소신 이었다

2011-03-17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아닌 소신 이었다    [충청투데이 원문보기]


 
[충청정치 반세기]김종호 전 국회부의장 ③ 1998년 13대 총선 고향인 괴산서 민정당으로 3선 성공 세계보이스카우트 의원연맹 창설 잼버리대회 적극지원 서민 신협조합법 개정·새마을운동 앞장 농촌애정 쏟아

 

                                                                                  

▲ 1991년 열린 강원도 고성 잼버리대회장에서의 김 전 부의장.

 


◆3선 도전에 성공

 

1987년은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중요한 해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불허하는 4.13 호헌조치를 내렸다. 그러자 6.10항쟁의 불꽃이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6.10항쟁은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해 12월 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6.29 선언이 퇴보하고 있던 한국의 민주주의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이다. 6.29선언은 6월 항쟁의 결과물이자 군부정권의 항복 선언이었던 셈이다. 김 전 의원은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이 6.29선언에 대한 결심을 잘한 것이다.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이 무난하게 당선된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이듬해인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총선에서 김종호 전 의원은 고향인 충북 괴산에서 민정당 소속으로 출마해 3선에 성공한다. 김 전 의원은 국회의원이 3선과 5선을 할 때가 제일 어려운 때인 것 같다. 3선을 하더라도 10년이 넘고, 5선을 하면 20년이 되는 것이다. 3선과 5선에 도전할 때 정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 국회 신협의원 창립총회.

 


◆세계보이스카우트 운동 국회의원연맹 창설 주도

 

3선 도전에 성공한 김 전 의원은 1988년 5월 28일 여야 의원 40여 명과 함께 스카우트 동호회를 조직해 활동한다. 또 1991년 열린 제17회 세계 잼버리대회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국회에 구성해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지원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김 전 의원은 전 세계의 보이스카우트 출신 국회의원들을 다 모아서 세계 보이스카우트 운동 국회의원연맹을 창설해야겠다 생각하고 일을 벌였다며 국회의원 스카우트 동호회 결성 동기를 밝혔다.

 

1991년 8월 서울에서 세계 보이스카우트 연맹 창립총회가 열렸고, 김 전 의원은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다. 한국의 국회의원이 전 세계 27개국 60여 명의 국회의원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국을 설득하는 일이 큰 과제였다. 김 전 의원은 미국은 보이스카우트 국회의원 연맹 같은 게 없어도 보이스카우트 운동 자체의 힘만 가지고 운동이 잘 발전하고 있지 않느냐? 전 세계의 보이스카우트 운동을 발전시킬 책임이 미국한테도 있다. 선진국이니까 너희가 참여해 한국이 주도해서 하면 무슨 상관있겠는가?라며 미국을 설득했으나 결국 미국은 총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초대 총재에 취임한 김 전 의원은 2대 총재까지 연임했고, 1997년 마닐라 총회에서 창설자 겸 영구 명예 총재로 추대된다.

 


▲ 세계잼버리대회지원 특별위원장과의 만남 모습.

 


◆새마을 운동과 농촌사랑

 

여소야대 형국의 제13대 국회는 난항을 거듭했다. 5공 특위 광주청문회 등 민감한 정치 사안을 놓고 여야 간에 극한 격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1988년 12월 16일 제144회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신용협동조합법 개정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김 전 의원은 신용협동조합, 신용금고, 새마을금고는 농촌에서 좌판 놓고 장사하는 서민들한테 제일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신용협동조합법을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개정해주었다며 서민들을 위한 관련법 개정에 대해 설명했다. 또 김 전 의원은 농어촌의정회를 내가 나서서 만들었다. 농촌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국회의원 50명이 참여했다. 시골 사람들이 여의도에 와서 시위하면 모두 같이 나가서 농민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곤 했었다며 농촌을 위한 당시의 의정 활동을 회고했다. 김 전 의원의 농촌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남달랐다. 1973년 내무부 새마을 담당관 시절 김 전 의원은 새마을운동과 인연을 맺는다. 깃발부터 교재, 모자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김 전 의원은 내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지금의 새마을 깃발, 새마을 배지, 새마을 교재를 만들었다며 선진국형 새마을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김 전 의원은 옛날의 보릿고개라는 것은 나쁘게 이야기하면 굶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역사가 그러니까 보릿고개를 없애겠다고 해서 시작한 것이 새마을운동이다. 지금은 선진화된 새마을 운동을 다시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서울서 열린 세계스카우트연맹 창립총회.

 


◆백주대낮 탈출 소동

 

2000년 6월 5일 제16대 국회가 열렸다. 자유민주연합 총재대행이었던 김 전 의원은 국회 부의장에 선출된다. 하지만, 국회는 문을 여는 순간부터 파행으로 일관했다. 국회법 개정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이다. 당시 자민련과 민주당이 연합해 DJP 공동정부를 구성했지만, 자민련은 20석을 확보하지 못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었다. 자민련이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의석수를 더 확보하거나 관련법을 개정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래서 국회법을 개정하려 했지만 한나라당이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자민련은 17석을 확보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3석이 부족했다. 그래서 자민련은 국회법 개정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교섭단체 유효권을 20석에서 10석으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여야 간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7월 24일 운영위원회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25일 본회의 통과를 강행할 예정이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만석 국회의장과 김종호 부의장의 집을 강제로 점거하게 된다.

 

김 전 의원은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집권 여당인 민주당과 자민련이 뒷거래해서 날치기 처리할까 봐 우리 집에 150여 명이 몰려왔다. 국회의원들이 내가 일어나지도 않은 새벽 6시에 우리 집에 쳐들어온 것이다. 그리고는 나를 꼭 붙들고 국회에 못 가게 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 몰래 집을 빠져나오려 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백주대낮에 때아닌 탈출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김 전 의원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집을 점거하고 있어서 부엌으로 빠져서 담장 있는 데까지 나갔다. 집 담장을 넘으려 하는데 바로 옆집 아래층 분식집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쫓아오더니 여기 밟고 내려 오세요라며 어깨를 밟으라고 했다. 그 아주머니 어깨를 밟고 집 밖으로 나왔는데 젊은 사람 하나가 그 광경을 보았고, 그 사람이 가서 이야기할 것 같았다. 그 사람이 가서 이야기하면 잡으러 올 텐데 잡혀가느니 내가 집으로 들어가는 게 옳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며 백주대낮 탈출 해프닝을 설명했다. 김 전 의원이 자신의 집 담장을 넘어 탈출을 시도했지만 스스로 다시 집으로 들어가면서 탈출소동이 허무하게 끝났다.

 

 

◆대통령 탄핵 반대표 2인 중 한 명

 

당시 정치적 상황은 어려웠다. 제16대 국회의 파행으로 정치권에 대한 국민 여론이 좋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새천년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고, 2003년 2월 25일 취임한다. 하지만, 민주당 내의 신·구세력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결국, 민주당이 분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이 창당된다. 열린우리당 창하 이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2004년 4월 15일 실시될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당 지지발언을 하게 된다. 신당지지 발언이 계속되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무원 선거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때부터 반 노무현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이런 분위기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안 제출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2004년 3월 9일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탄핵안에 대한 투표 결과 전체 195표 가운데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다. 탄핵소추안 가결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이 정지됐고, 대행 체제로 들어간다. 헌법재판소에서 기각할 때까지 2개월 동안 한국 정치는 예외적인 사태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당시 대통령 탄핵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2명의 의원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그 중 한 사람이 자유민주연합의 김종호 전 의원이었다.

 

김 전 의원은 그때 언론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과 어떤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노무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위해 주느라고 반대표를 던진 것이 아니다. 탄핵 소추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가. 현행법으로 크게 죄를 지었던지 대통령을 오래 했던지, 그러면 탄핵 소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옳지만, 취임 초반인데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내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반대표를 던졌다고 소신을 밝혔다며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반대 소신론을 펼쳤다.

 

자유민주연합의 당론은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었지만, 김 전 의원은 자신의 소신에 따라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계속> 글=엄경철 기자 eomkc@cctoday.co.kr

 

사진=이덕희 기자withcrew@cctoday.co.kr

 

자료사진=김종호 전 국회부의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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