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한국의 캠핑장_하늘·땅 모두 별이 뜨는 곳, 고양 서삼릉청소년야영장
2011-03-16
[한국의 캠핑장] 하늘·땅 모두 별이 뜨는 곳, 고양 서삼릉청소년야영장
▲하늘에 달과 별이 뜨자 땅에서도 텐트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인다. /이윤정 기자
햇살이 소리 없는 외침으로 봄을 알리고 있습니다. 겨우내 넣어뒀던 텐트를 무작정 꺼내 캠핑을 떠납니다. 서울과 지척에도 별을 볼 수 있는 야영장이 많습니다. 서삼릉청소년야영장도 그 중 하나입니다.
“아웃도어라면 사람들은 야외에서 노는 것이나 여행을 하는 것으로, 혹은 다소 모험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 속에 감히 ‘산다’는 시야를 포함시켰다. 그 이유는 가장 참다운 아웃도어란 사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책 ‘여기에 사는 즐거움’의 저자 야마오 산세이는 아웃도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1977년부터 세상을 떠난 2001년까지 일본 남쪽의 작은 섬에서 자연 속 구도자로 살았던 저자는 ‘인도어’는 우리집, ‘아웃도어’는 타인의 집, 아니 모든 생물들의 집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데요. 다른 생물의 집에서 하룻밤을 청하는 캠핑은 아웃도어의 참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줍니다.
40년 전통, 스카우트연맹 중앙훈련원 야영장
▲서삼릉청소년야영장은 한국스카우트연맹 중앙훈련원 내에 있다. / 이윤정 기자
서삼릉청소년야영장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습니다. 서울 구파발을 넘어서면 바로 나타나죠. 이미 고양의 삼송지구는 서울 근교답게 개발이 한창입니다. 고즈넉한 풍경은 공사현장의 모래에 슬려 나갔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제역 때문에 곳곳에서 방역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날이 좋다고 창문을 열고 운전하던 이들은 죄다 소독약 세례를 맞았습니다. 서삼릉과 원당목장은 입구도 가기 전에 출입 제한. 주말을 맞아 나온 나들이객은 풋감을 씹은 표정을 하고 차를 돌리기 일쑤입니다.
황망히 차를 돌리는 행렬을 뒤로 하고 야영장으로 향했습니다. 공식 명칭은 ‘한국 스카우트연맹 중앙훈련원’. 흔하디흔한 시골길 옆으로 갑자기 훈련원 표석이 나옵니다. 언덕 위에 훈련원 본부 건물이 있고 아래로는 작은 숲으로 둘러싸인 운동장과 공터가 있습니다. 주말을 맞아 단체 행사가 줄줄이 이어진 덕에 이미 공터는 알록달록 텐트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서삼릉청소년야영장은 아마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야영장 축에 들 겁니다. 중앙훈련원이 1968년 약 3만2000평 규모로 이 자리에 들어섰기 때문이죠. 2003년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고 3년 전부터는 일반 야영장에서 오토캠핑장으로 쓰임새가 늘어났습니다.
서울 근교에서 해달별을 보다
▲아이들의 웃음/ 캠핑장에 가면 가장 좋은 것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만나는 것이다. 해먹에 모여들어 장난을 치는 모습이 해맑다. /이윤정 기자
봄햇살이 균질하게 야영장에 떨어집니다. 그늘막 타프가 텐트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흔들흔들 해먹도 집집마다 걸렸죠. 난로 대신 화로가 생활의 중심이 됩니다. 주말을 맞아 캠핑을 나온 50여 가구가 모두 봄 햇살에 흠뻑 젖습니다. 서울에서 한 뼘 나왔을 뿐인데 아웃도어의 흥취가 제법입니다.
해가 뉘엿뉘엿 산 뒤로 몸을 누이자 캠핑장의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왁자지껄 게임을 즐기던 무리가 하나둘씩 보금자리를 찾아 들어갑니다. 텐트에는 불이 들어오고 모락모락 저녁 익는 냄새가 야영장에 깔립니다.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에 정신이 아찔할 때쯤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반달이 채 차오르지 않은 모양새로 싱긋 미소 짓습니다. 비밀신호라도 보내듯 밤하늘에 박힌 별들은 이곳저곳서 반짝이는 수신호를 보냅니다. 바로 옆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소음만 들리지 않는다면 서울과 지척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습니다. 캠핑장의 땅에는 텐트마다 환히 밝힌 불이 어두움을 야금야금 삼킵니다. 하늘에도 땅에도 별이 반짝입니다.
서삼릉과 원당목장, 이국적 풍경 속 기구한 사연
▲서삼릉 가는 길/ 야영장에서 서삼릉과 원당목장을 돌아보는 트레킹이 가능하다. 편도 1시간 반 정도 쉬엄쉬엄 걷는 길이다. 그러나 현재는 구제역 방역 문제로 서삼릉과 원당목장 모두 전면 출입이 중단된 상태다. /이윤정 기자
지금은 구제역 방역 문제로 출입이 제한되는 서삼릉은 3개의 릉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나 연유를 알게 되면 마치 조선왕조의 공동묘지 같다는 느낌이 들게 되죠. 3개의 능과 3개의 원, 폐비 윤씨의 회묘, 후궁·왕자·공주 묘 46기에 왕족들의 태실까지 있습니다. 참 이상하죠. 원래 조선시대에는 공주와 왕자 묘를 왕릉 능역에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에 전국에 흩어져 있던 후궁·왕자·공주 묘를 이곳에 모아놓았죠.
서삼릉의 기구한 사연은 바로 옆 원당목장으로도 이어집니다. 1960년대 정권이 왕릉 땅을 마사회, 축협, 골프장, 농협대학 등에 넘겨줬죠. 늠름한 말이 누비는 넓고 푸른 초지가 옛 왕릉 땅이라니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서삼릉은 2009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야영장에서 서삼릉과 원당목장까지 걷는 하이킹은 왕복 3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캠핑의 계절/ 타프와 의자가 캠핑장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캠핑을 하는 계절이 따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봄 햇살이 따스한 요즘, 마치 ‘캠핑의 계절’이 온 듯 느껴진다. /이윤정 기자
▲야영장 전경/ 서삼릉청소년야영장은 원래 오토캠핑장은 아니었다. 3년 전부터 오토캠핑을 올 수 있게 됐다. 야영장 주변으로 키 큰 나무가 많아 여름에도 그늘 걱정은 덜 것 같다. /이윤정 기자
▲스카우트 훈련/ 지난 주말 콜맨보이스카우트 훈련이 열렸다. 어린 대원이 친구의 침낭을 들고 텐트로 향한다. 서삼릉야영장은 여름 성수기에 스카우트 훈련 일정이 빽빽하게 잡힌다. /이윤정 기자
▲텐트 지키는 개/ 요즘에는 반려견을 야영장에 데려오는 캠핑객이 많다. 서삼릉야영장에서 만난 개 한 마리가 주인이 없는 텐트 앞에서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이윤정 기자
▲캠핑장의 밤/ 캠핑장은 밤이 되면 더욱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가 나고 사람들은 텐트 주변에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이윤정 기자
▲모닥불 아래서/ 모닥불 옆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다. 이 시간이 캠핑에서 가장 좋다. 여유로운 시간이 흘러간다. /이윤정 기자
▲원당 목장/ 경기용 말을 사육하는 목장으로, 한국마사회가 관리·운영한다. 탁 트인 초원이 구릉을 이루는 곳에서 말들이 풀을 뜯는 아름다운 목장 풍경 때문에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자주 이용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효릉 입구/ 서삼릉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3기의 능은 조선조 11대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 윤씨의 능인 희릉, 그의 아들인 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인 효릉, ‘강화도령’으로 불리는 25대 철종과 그의 비인 철인왕후의 예릉이다. 사진은 효릉의 입구. /경향신문 자료사진
디지털뉴스팀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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