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한국 스카우트 충남연맹 5일 창립 50주년… 되돌아본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2011-11-04
백두산·집안·단동…가는 곳마다 민족혼 가득 [원문보기]
한국 스카우트 충남연맹 5일 창립 50주년… 되돌아본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백두산 천지의 장엄한 자태. 광활하고 웅장한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기개를 느끼게 된다. 사진=임은수 기자
오는 5일은 한국스카우트 충남연맹 창립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충남스카우트연맹(연맹장 조기준)에서는 광복 66주년 기념으로 지난 8월 코스모스항공 여행사(대표 나병수)의 후원으로 고구려 역사탐방에 나섰다. 역사탐방에는 충남지역 초·중고 스카우트대원 및 지도자 120여 명이 참여했다.
충남 스카우트 대원과 지도자 120여 명은 8월 13일 인천항에 집결, 발대식을 가진 후 중국 대련으로 향하는 대인 페리호에 승선하면서 5박6일간 여정에 올랐다. 16시간에 걸친 항해 끝에 중국 대련 앞바다에 도착했지만 입국통제(중국 군 작전함 진수식 때문에)라는 방송과 함께 대원들은 2시간 넘게 기다리다 입항했다.
△백두산 천지를 보다
광복절 아침 일찍 백두산 천지 등정을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백두산 등정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대원들과 지도자들은 반나절을 버스로 달려 백두산 입구인 송강화로 이동했다.
대원들과 지도자들은 1340여개의 돌계단에 도착, 한 발 한 발 천지로 향하면서 신성함과 경외감마저 느껴졌다.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천지를 볼 수 있을까 싶었다.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순간 많은 역경을 겪은 대원들에게 고통의 순간을 말끔히 씻겨주는 광활하고 웅장한 모습을 선사했다.
벅찬 감정에 단원들은 탄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중국 군인들이 태극기를 흔드는 것조차 통제를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원들은 천지에서 꽹과리와 북소리를 울리며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염원하며 중국군과 중국 관광객들 앞에서 보란 듯이 대한민국 만세 대한 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고 한다.
△왜곡의 역사
말로만 듣던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왜곡 현장을 피부로 느꼈다.
동북공정에 의한 중국 당국의 역사왜곡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동북공정의 내용은 중국 국경 내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한다는 것이다. 즉, 중국은 한족을 중심으로 55개 소수민족으로 성립된 국가이며 현재 중국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게 그들의 시각이다. 이 연구에 의해 한국의 고대사인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역사 또한 고대 중국의 지방민족정권이 만든 중국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런 중국의 역사의식은 대장정을 떠난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의 역사왜곡은 특히 고구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고구려의 첫 도읍지였던 졸본산성을 오녀산성이라 이름을 바꿔 부르고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었다.
△고구려 역사 현장 속으로=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집안(국내성)은 고구려 유적의 핵심지로 선조들의 호방하고 장대한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국내성 왕궁터를 중심으로 광개토대왕릉비와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서대묘, 천추묘 등 주요 왕릉에서부터 사신총, 각저총, 무용총 등 귀족의 무덤들이 산재해 있었다.
광개토대왕릉도 규모는 거대하지만 대부분 무너져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어 아쉬움을 남겼다. 찬란했던 고구려사를 상징하는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 등 여러 유적지를 돌며 도굴로 훼손되고 방치된 모습들에 안타까웠다.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 등 고구려 유적지는 역사왜곡이 더 심했다. 김영구 충남스카우트 단장은 유적지를 보며 중국 사람들은 고구려를 동북지역에 있는 소수민족 정권이라고 왜곡한다고 설명했다.
유적지 주변은 공원처럼 깔끔하게 정리됐지만 사신도가 그려진 오호묘 고분 벽은 방수처리를 하지 않아 계속해서 물이 흘렀다. 광개토대왕릉의 석관은 관광객이 마음대로 밟고 다녀 군데군데 훼손돼 있었다.
△압록강서 본 북한 풍경=단동 비즈니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북한 신의주가 눈앞에 보이는 압록강변으로 향했다.
6·25때 끊긴 압록강 철교를 걸어 신의주 쪽으로 가다보니 끊어진 철교의 끝자락이 대원들을 반겼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 간에는 너무나 다른 두 세계가 공존했다. 단동 쪽은 고층 건물이 솟아 도시 면모를 갖춰가며 거리의 시민들 모습도 여유로운 반면 건너편 신의주 지역은 인기척이 없고 어린이 놀이터인 듯한 시설물들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어 너무 대조적이었다.
中 집안·단동=임은수 기자 limes@daejonilbo.com
[대전일보 11월 3일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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