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여름과 동시에 다이어트를 시작한 필자에게 운명처럼 두 권의 책이 찾아왔다. 이번 여름 휴가 기간 중 이가은 작가의 '고요히 치열했던 사적인 그림 읽기'와 미국의 저널리스트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를 읽었다.
이가은 작가는 신문방송학으로 석사까지 마치고 다시 역사를 전공하면서 그림을 글감으로 삼아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적인 그림 읽기'는 저자의 다양한 경력처럼 에세이인 듯, 학술서인 듯 다채로운 즐거움을 주는 책이었다.
밀로의 비너스를 소개하면서 저자의 경험을 녹여 다이어트의 역사를 언급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고관에서 육체는 정신의 거울이었다. 그래서 뚱뚱함은 외관상의 추함만이 아니라 정신적 불균형까지 의미하는 결함이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다이어트에 힘썼다고 한다.
캐럴라인 냅이 '욕구들'에서 인용한 바에 따르면, 여성들이 자기 몸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비율은 남자들의 3배이다. 여성의 80퍼센트가 다이어트를 한 경험이 있고, 어느 순간에나 여성의 절반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으며, 자기 몸이 늘 불만스럽다고 답하고 있다. "거울 앞에서 남자는 자신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여자는 자신이 살쪘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역사상 다이어트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가혹한 숙제였지만, 이제는 아름다워지고 싶은 개인의 욕구를 넘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인류의 숙제이자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세계 비만 인구가 2022년을 기준으로 10억 3천만 명에 이른다고 경고하였다. 80억 세계 인구 가운데 8명 중 1명이 비만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비만율이 급상승한 우리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대한비만학회가 금년 3월 8일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비만의 사회적 비용이 15조 6천400억 원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필자의 갑작스러운 다이어트는 건강이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어른이 되고 싶어서이다. 지난 2월부터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를 맡으며 양복 아닌 제복을 입는 시간이 많아졌다. 맞춤 제작하는 양복과 달리 기성복인 스카우트 제복은 몸매를 숨기기가 어렵다. 함께 사진을 찍으면 날씬한 청소년들과 지도자들 사이에 배불뚝이 총재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식단을 조절하고, 평소와 달리 식사량과 운동량의 비율을 반대로 놓고 있다. 밤마다 찾아오는 공복을 캐롤라인 냅의 묘사처럼 밧줄로 수소를 잡아매듯 꽁꽁 잡아매기를 반복하고 있다. 19살 때까지의 학교성적 혹은 사법시험 한방으로 평생을 보장받으며 안일한 삶에 안주하는 생물학적 어른이 아니라, 예순이 되어서도 새롭게 변화하는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비만보다는 날씬한 친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다.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들로 산으로 나가서 호연지기를 키웠다. 지금은 어떤가. 콘크리트로 만든 집과 학원 속 책상에 앉아 시험용 교재와 컴퓨터, 핸드폰만 쳐다보다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운다. 비만을 부르는 생활 습관이다.
한국스카우트연맹은 앞으로 청소년들에게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세상이 아니라 푸른 산과 하늘, 밤하늘의 별을 직접 보여주는 야영을 더 많이 개최할 것이다. 패스트푸트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건강식을 자연 속에서 섭취하게 할 것이다. 위장의 포만감보다 정신의 풍족함이 인생을 더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할 것이다. 스카우트는 다이어트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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